[기자수첩]중동 난민 사태, 문제는 '그들'이 아닌 '우리'다

유창선 기자 / 기사승인 : 2018-07-09 15: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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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문화를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중동 난민 사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GettyImagesBank이매진스]

(이슈타임)유창선 기자=요즘 한국에서 예맨 난민의 수용여부로 한창 논쟁이 뜨거운 것 같다. 인도주의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 또한 가치관과 편견 등 여러가지 복잡한 이슈 등이 엮여 쉽게 누구의 편을 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한국보다 먼저 상황을 겪은 호주의 예를 통해 한번 더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이전 호주는 백호주의라는 암묵적인 정책으로 유럽 중심의 이민자 유입을 권장해 왔으나 19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의 이민자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과 인도 및 아시아 국가 들에서 들어오는 이민자가 유럽계 이민자 수를 능가하고 있고, 중동계 이민자들도 일정 영역 자신들만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기자가 직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유럽계 호주인이나 호주에서 태어난 기존 호주인들은 일반적으로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이나 비유럽계 호주인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새로운 이민자들은 기존 호주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사회적으로 크고 작은 마찰을 일으키기 마련인데 이들은 그것 역시 호주화 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국인 대상 한 영어교사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예전에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올 때 그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켰으나 지금은 호주 문화에 포용 되었고, 이후 베트남계, 중동계, 그리고 지금은 아시아계가 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호주가 모든 문화들이 서로 섞여 하나로 어울려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서로 다른 문화권이 자신들의 영역을 유지하면서 서로 교류하는 모습에 가깝다. 각 문화권에 따라 사는 지역부터 교류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직업군까지도 다르다. 물론 경제적인 차이가 이런 차이의 가장 큰 요소일 수 있으나 현상적으로는 문화권에 따라 구분하는 것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중동지역 출신이라는 인종적인 접근법이나 종교로서의 이슬람을 접근하는 방법은 무슬림이라 불리는 사회의 본질적인 차이를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가 만난 한 리비아 출신 무슬림의 경우 매우 독실한 무슬림이었지만 흔히들 생각하는 극단적이거나 폭력적인 사람이 아닌 매우 신사적이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무슬림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단순히 잘못 만들어진 이미지나 편견일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실생활을 통해 겪는 문제가 작지 않았다.


호주에서 중동계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은 많은 경우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살기를 기피한다. 현실적인 문제로 그곳을 떠날 수는 없지만, 동일한 조건에 다른 지역이 있다면 굳이 중동 문화권 지역으로 이사가지는 않는다. 다른 문화권 지역에 비해 범죄율도 높은 편이고, 크고 작은 마찰도 잦은 편이다. 기자도 예전에 중동 문화권 지역 인근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한번은 아이가 3세 정도일 때 공원에 데리고 갔는데, 옆에 무슬림 여성들이 여럿이 3~7세 정도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있었다. 미끄럼틀에 우리 아이가 올라가려고 할 때 중동계 아이들이 몰려들어 미끄럼틀을 차지하고 아이가 올라가지 못하게 하더니 그 중 하나는 우리 아이에게 침을 뱉었다. 심지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여성들은 상황을 보면서도 말리거나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무슬림 동네에 살던 또 다른 지인은 옆집에 살던 중동계 아이와 몇 번 인사를 했는데, 이후 허락없이 담을 넘어 자신의 집 마당에 들어와 놀더니 나중에는 부엌에 들어와 냉장고에서 음식을 스스럼없이 꺼내 먹더라고 했다.


물론 일부 극단적인 경우일 수 있으나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그들 문화권에서는 그렇게 심각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친해졌다고 생각한다면 서로 간에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우리의 폭보다 상당히 크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기엔 지나치다 싶은 일들도 서로 받아들이곤 한다. 또한 그들은 자존심이 무척 중요해서 자신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면 극단적인 선택도 개의치 않을 수 있다. 경제적인 이해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했다면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고 심지어 적대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앞의 예를 가지고 해석해 보자. 그들은 자신들이 차지한 놀이터에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오려고 한 것이고 아이들은 ‘우리’를 위해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느낄지라도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자신들에게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옆집이 가까워졌다고 느낀 아이는 옆집도 ‘우리’가 되었다고 느끼고 자신의 집에서 했던 행동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었을 것이고, 만일 옆집 아이가 자신들의 집에서 같은 행동을 했더라도 받아들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선의로 한 어떤 행동도 만일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주게 될 경우, 그들에겐 적대감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에 대해 그들은 그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에 이 문제를 적용해 보자. 우리는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 주면서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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