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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일 변호사의 법률사무소]돈을 안받았다는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민사 사건에서의 입증책임 문제에 관해
민사소송법상의 입증책임론에 따라 변제할 의무가 있는 피고가 입증해야 한다.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GettyImagesBank이매진스]

최근에는 매출면에서나 사건수에서나 일반 민형사 소송사건을 수행하는 것 이상으로 기업 또는 개인에 대한 법률적 자문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변호사로서 기본이 되는 것은 송무 수행이고 이는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소송 사건을 수행함에 있어서 제1은 바로 증거의 발견과 정리이고 주장하는 내용에 적합한 증거를 적시에, 적절한 설명과 함께 제출해 법원의 판단에 기초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런데 소송을 위임받아 수행하다 보면 많은 수의 당사자들이 증거 관계에 대한 입장을 혼돈해 주장하는 일이 많고, 이는 '안타깝지만' 법률전문가의 경우에도 간혹 실수하는 경우가 있는 듯 하다.

최근에 필자가 수행한 소송사건의 상대방 당사자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 분은 필자의 의뢰인에게 현금으로 돈을 주었다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 날짜에 자신의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한 내역을 증거로 내밀었다. 필자의 의뢰인이 돈을 받았으니 더 이상 채무를 변제할 의무가 없다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터였다. 이에 소송 진행에 답답함을 느낀 필자의 의뢰인이 필자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해 재판을 수행했던 것인데 필자가 법정에서 피고 본인에게 '피고가 돈을 자신의 통장에서 인출했다는 증거는 있을지 몰라도, 이 돈을 원고가 받았다는 증거가 없지 않는가', '원고가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무엇인가'라고 따져 물으니 "아니 변호사님, 그럼 원고가 돈을 안받았다는 증거는 있습니까?"라고 되물어 따지는 것이었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피고 본인에게 장황하게 '민사소송법상의 입증책임론'을 강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길게 말다툼을 하지는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돈을 받았다"거나 "돈을 주었다"는 입증은 용이(容易)하더라도 "돈을 받지 않았다"거나 "돈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거로 증명하는 것이 요원(遙遠)한 일임은 익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저 피고의 일갈은 소송상 증거와 입증책임 문제에 관한 손쉬운 오해를 보여주는 듯해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 웃지 못할 일은 그 다음에 선임돼 나타난 소송대리인의 주장이었다. 이 분은 그래도 법률전문가이기에 '입증책임론'을 거론하며 주장을 펼치셨는데 '민사소송법상 <입증책임의 원칙>에 따라 기본적인 입증책임이 원고에게 있으므로 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 역시 원고에게 있다'는 주장이었던 것이다. 이 주장이 실수였는지 전략적 접근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필자로서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사실 우리 민법이나 민사소송법에서 입증책임의 원칙에 관해 어떤 것은 누가 입증해야 하고 어떤 것은 누가 입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일반조항이나 절차조항은 없다. 다만 주장자 입증책임의 원칙이나 요건사실 입증책임의 원칙과 같은 일반 법리에 따라서 해당 사실에 대한 입증을 누가할 것인지 정하고 있을 뿐이며, 민법이나 상법 같은 각각의 법률에서 문구나 규정의 배치 등을 통해 입증책임을 전제로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해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사람이 가해자의 고의와 과실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민법 제390조는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해 반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사람이 자신에게 고의나 과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고의 또는 과실이 추정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필자가 언급한 위 사건에서도 일단 주장자 입증책임의 원칙에 따라 원고 측인 필자와 의뢰인 측이 상대방인 피고가 돈을 변제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계약서와 각서라는 처분문서를 통해 명시적으로 입증했던 것인데, 이에 대해 피고 측은 "돈을 갚았다" 또는 "돈을 주었다"는 매우 간단한 사실을 입증하면 되는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 피고와 그 소송대리인은 반대로 "돈을 변제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되려 우리더러 '증명'하라고 하니 답답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법률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부존재 사실의 입증책임'이라고 하는데 특정한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 존재를 다투는 사람 즉,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존재함을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인 것이다. 예컨대 피고 측은 돈을 송금한 송금내역서, 통장사본이나 아니면 영수증을 통해 '변제행위의 존재'를 자신이 증명해야 하는 것인데 이를 우리더러 밝히라고 하니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것을 증명하라고 하는 소위 '입증책임 원칙에 반하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당연히 필자의 의뢰인 측 승소로 귀결될 밖에. 이런 고로 '부존재 사실에 대한 증명은 악마의 증명과 같다'는 법언마저 있는 것이다.

물론 법조문의 내용이나 사실관계에 따라 사실의 부존재를 주장하는 측이 이를 증명해야 할 경우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법리상으로 볼 때 '입증책임의 원칙'이라는 것이 '진실의 발견을 위한 과정'의 의미가 큰 것이어서 사안에 따라 입증책임 전환되거나 완화되거나 하는 경우도 허다하며 입증책임의 원칙이 소송의 승패와 일치한다고 단정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대략 어떤 사실이나 주장을 누가 입증해야 하는가에 따라 소송의 난이도가 확인됨은 물론 그에 따라 우리 측 권리 구제의 확률이 좌우되는 것이니 이는 소송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입증책임 원칙에 대한 매우 기초적인 이해만 있다면 실제 실생활이나 거래관계에서도 매우 유용한 활용을 할 수가 있는데 앞서 언급한 사안에서 – 만일 피고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피고는 자신이 돈을 찾아와서 원고에게 직접 건네주면서 – '이거 나중에 내가 돈을 찾은 내역으로 증명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할게 아니라 '이거 나중에 내가 돈을 준 것을 입증할려면 영수증이라도 받아놓아야 겠네'라고 생각했다면, 손쉽게 소송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해당 사안에서는 추후 피고가 인출한 현금을 다른 곳에 사용했음이 밝혀지기도 했기에 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사실 증거에 관해 중요한 문제는 '입증책임' 문제 외에도 의외로 많다. 필자가 누누히 강조하는 '계약서'나 '각서' 등 처분문서야 말로 제1의 증거여서 그 기재나 문구에 주의를 당부하는 것을 지겹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사실 법적인 분쟁은 증거에서 시작돼 증거로 끝이 나는 것이 거의 전부이기에 각각의 증거를 잘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적시에 활용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금번에는 '입증책임' 문제를 상술해 보았다. 부디 이 짧은 당부가 당신에게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오현일 변호사  isstime@iss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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