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희 변호사의 법률상담소]이건 뺑소니일까?

최지희 변호사 / 기사승인 : 2018-06-11 11:11:09
  • -
  • +
  • 인쇄
뺑소니 여부는 사상의 피해를 입히고도 필요한 조치를 취했냐 여부로 따지게 된다.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GettyImagesBank이매진스]

A는 아는 형님을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해 퇴근을 하던 중 정지신호에 정차 중이던 앞차를 충돌하는 사고를 냈다. 앞 차 운전자는 바로 차량에서 내려 충돌부위를 확인하고 A차량의 번호판과 사고 부위 등을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A의 형님은 차에서 내려 차가 막히니 일단 인도 쪽으로 차를 옮기자고 했다. A는 피해차량을 따라 비상깜빡이를 켜고 몇 미터 앞으로 가 인도 쪽에 차를 대고 차에서 내려 피해차량 쪽으로 왔다. 피해차량의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 안에서 통화를 했다.


여러 차례 A가 창문을 두드려도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차에서 통화만 하고 있었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A는 동석 중이던 형님과 피해 차량 옆 길에서 담배를 태우며 7~8분가량을 기다렸고, 몇 번 더 창문을 두드리다 형님에게 자신은 일단 차를 뺄 테니 차량에서 사람이 내리면 전화를 좀 달라고 하고 자신의 차를 타고 갔다. A는 퇴근길에 정차도 심해 다시 차를 돌리기도 어렵고 형님에게 별다른 연락이 없자 잘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집으로 갔다.


이 모든 상황은 사고 인근 가게의 CCTV에 그대로 녹화돼 있었고, A가 간 뒤 같이 있던 형님이 차에서 내린 피해자와 10분 가량 대화를 하고 형님이 떠나는 장면도 녹화가 돼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아침 A는 경찰에서 뺑소니로 입건됐으니 출두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뺑소니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혹자는 A가 가해자라면 응당 자신의 연락처나 명함을 주어야 함에도 그냥 집으로 갔으니 뺑소니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뺑소니는 사고를 내고 도망가는 것인데 A는 도망간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기다리다 부득이 사고 현장을 떠나게 됐으니 뺑소니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법률전문가인 필자가 보기에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또 필자조차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25년 교통사고를 전담조사한 베테랑 형사에게 물었더니 같이 동승하던 형님이 남아있었고 형님이 적절하게 처리했다면 A를 처벌할 수 없을 것 같고, 형님도 그냥 갔으면 A는 뺑소니로 기소될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은 결국 남아있던 형님의 이후 행동이 A의 범죄여부를 결정한다기 보다는 A가 진지한 의사로 부득이하게 형님에게 남아서 사고처리할 것을 당부하고 떠났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소위 뺑소니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에 규정된 도주차량운전자의 가중처벌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가법 위반 도주차량'으로 불리는 것이다. 동 규정에서는 자동차 등을 운전하면서 과실/중대한 과실로 교통사고를 내어 사상의 피해를 입히고도 도로교통법 상의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한 때에는 통상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보다 가중해 처벌하도록 했다. 즉'도주'가 핵심 개념인데 통상적인 의미의 도주와 동 법에서 도주의 의미는 구별된다. 앞의 사례에서 A는 통상적인 관념의 도주는 아니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사고 운전자가 사고로 인해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을 인식했음에도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기 이전에 사고현장을 이탈해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도로교통법 제 54조 제1항의 취지는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해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이 경우 운전자가 취해야 할 조치는 사고의 내용과 피해의 정도 등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강구돼야 하고 그 정도는 건전한 양식에 비추어 통상 요구되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피해자가 경찰관 등 교통사고와 관계있는 사람에게 사고 운전자의 신원을 밝히는 것도 포함된다 할 것」이라고 하면서 사고 경위와 피해자의 상해 정도, 운전자의 과실 정도 등을 종합해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도주 여부를 판단한다.


사고 운전자가 교통사고 현장에서 동승자로 하여금 사고 차량의 운전자라고 허위 신고했지만 사고 장소를 이탈하지 아니한 채 보험회사에 사고접수를 하고 경찰관에게 위 차량이 가해차량임을 밝힌 사안에서는 도주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사고 운전자가 사고 직후 피해자들과 함께 차량을 인근의 성당 앞으로 이동시킨 뒤 피해자들과 피해 변상액을 협의하다가 상대방에서 애들 때문에 합의해 주는 것이라는 말에 기분이 상해 마음대로 하라면서 사고 현장을 이탈했던 사안에서는 상대방이 상해를 입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특가법상 도주가 아니라고 했다.


즉 가해자가 반드시 피해자 본인에게 자신의 신원을 밝힐 필요는 없고, 상해여부가 불문명한 매우 경미한 사안에서는 신원을 밝히지 않고 그냥 갔다고 해서 뺑소니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교통사고는 경미하나마 차량 탑승자의 상해를 동반하게 되고 상대방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뺑소니로 의율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위 사안의 경우에도 A가 본인의 명함이나 인적사항을 동승한 형님에게 반드시 알려주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 점이 분명치 않았고 그 형님 역시 피해자와 언쟁을 하다가 마음대로 하라며 그냥 집으로 갔던 탓에 A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하지만 뺑소니로 처벌을 받았다.


뺑소니 운전은 형사상 처벌도 엄하지만 4년간 면허가 취소되기 때문에 사실상은 더욱 심한 불이익을 동반한다. 특히 자신이 다쳤는지를 명확히 판단할 수 없는 아이들이 사고를 당한 경우에는 실제로 차에 치인 것인지 여부 조차 불분명해도 반드시 부모의 연락처를 물어 통화를 해야 하고 아이들이 혼날까봐 무서워 부모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A의 사례는 지금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례인데, 범퍼가 긁힌 정도의 경미한 사고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사고 처리에 미흡했던 대가는 일용직 노동을 하는 A에게는 너무도 컸다.


[저작권자ⓒ 이슈타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